그리스도인의 가정(The Christian Family)

제 21 장 (Chapter Twenty-One)

물론, 하나님께서 가정의 개념을 만드셨다. 이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가정의 기능에 대한 통찰력을 주실 수 있으며 가정을 파괴하는 함정에 대해서도 경고하실 수 있다. 실제로, 주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정의 구조와 각 구성원의 역할에 대하여 많은 원칙을 주셨다. 이러한 성경의 지침들을 준수할 때,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획하신 모든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위반한다면, 혼란과 상심의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The Role of Husband and Wife)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특정 구조에 적합하도록 설계하셨다. 이 구조가 가정생활에 안정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탄은 하나님의 설계를 애써 왜곡하려 한다.

첫째, 하나님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가 되도록 정하셨다. 이것은 남편에게 이기적으로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남편이 머리로써 가족들을 사랑하고, 보호하고, 공급하고, 이끌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아내들은 자기 남편의 지도력에 복종하도록 정하셨다. 성경을 보면 이 점이 분명하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남편은 아내의 영적인 머리가 아니다 – 예수님만이 그 역할을 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교회의 영적인 머리이며, 그리스도인 아내는 그녀의 그리스도인 남편처럼 교회의 한 구성원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그리스도인 남편은 아내와 자녀들의 머리이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느 정도 복종해야 할까? 아내는 바울이 말한 대로,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 규칙에 대한 유일한 예외는 남편이 아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거나 그녀의 양심을 위배하는 무언가를 하기를 기대할 때이다. 물론, 어느 그리스도인 남편도 자신의 아내가 하나님의 말씀 혹은 그녀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주님이 아니다 – 오직 예수님만이 그녀의 주님이시다. 만일 그녀가 누구에게 순종해야 할지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그녀는 예수님을 선택해야 한다.

남편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항상 “남편들의 편”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그에게 말한 대로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창 21:10-12을 보라). 성경은 또한 아비가일이 그녀의 어리석은 남편 나발을 거역하고 재앙을 피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삼상 25:2-38을 보라).

남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God’s Word to Husbands)

하나님은 남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엡 5:25, 28-30, 33).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작은 책임이 아니다! 어떤 아내라도 자기를 예수님처럼 희생적인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을 주는 남편한테 기꺼이 복종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도 자신과 “한 육체”가 된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엡 5:31). 자기 아내를 제대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남편이라면 마땅히 아내에게 공급해주고, 아내를 보살펴주고, 존중해주고,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만일 남편이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함이라(벧전 3:7, 강조 추가).

물론, 갈등과 불화가 완전히 없는 결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삶 속에서 헌신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남편과 아내는 화목하게 사는 것을 배워가고 그리스도인 결혼의 축복을 점점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 모든 결혼에서 발생하는 피면 할 수 없는 문제들을 통하여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남편과 아내의 의무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위해, 창세기 2:15-25; 잠언 19:13; 21:9, 19; 27:15-16; 31:10-31; 고린도전서 11:3; 13:1-8; 골로새서 3:18-19; 디모데전서 3:4-5; 디도서 2:3-5; 베드로전서 3:1-7을 보라.

혼인에서의 성(Sex in Marriage)

하나님은 성을 만드신 분이며, 분명한 것은 그분은 출산뿐 아니라 즐거움을 위하여 성을 만드셨다. 그러나 성경은, 성관계는 평생의 결혼 서약을 한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다고 명백하게 말씀한다.

결혼관계 밖에서 발생하는 성관계는 음행이나 간음으로 분류된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말했다(고전 6:9-11을 보라). 비록 그리스도인이 유혹을 받아 음행이나 간음 행위를 저지를 수 있지만, 그는 영적으로 큰 책망을 느끼게 되어 결국 회개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성적 책임에 관해 몇 가지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협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2-5).

이 구절들은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의 몸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성관계를 하나의 “보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매우 명백하게 지적하였다.

또한, 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그것이 결혼의 범위 내에 있는 한, 부정하거나 죄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결혼한 그리스도인 부부들이 성관계를 가질 것을 격려했다. 또한, 우리는 잠언에서 그리스도인 남편에 대한 아래와 같은 조언을 찾을 수 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8-19).[1]

그리스도인 부부가 서로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즐기려면, 남성과 여성이 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여자의 성적 본능이 그녀의 감정에 연결되어 있는 반면, 남자의 성적 본능은 더 물리적인 것이다. 여자는 관계와 신체 접촉으로 성적인 흥분을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고전 7:1을 보라), 남자는 시각적인 자극에 의해 성적으로 흥분된다(마 5:28을 보라). 남자는 시각적인 매력을 주는 여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반면, 여자는 단지 육체적인 매력보다는 존경하는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항상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현명한 남편은 아내가 하루의 끝에 갑자기 “변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항상 포옹해주고, 친절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하는 것을 통하여 아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준다.

남성의 성욕이 정액의 증가에 따라 커지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성의 성욕은 월경주기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남성은 성적 흥분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몇 초 또는 몇 분 내에 성적 절정에 이르지만, 여성은 훨씬 오래 걸린다. 남자는 일반적으로 몇 초 내에 성교를 위해 육체적으로 준비되지만, 여자의 몸은 반 시간이 흘러도 준비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현명한 남편은 아내가 성교를 위한 준비가 되기까지 그녀의 몸의 특정 부위를 애무하고, 키스하면서 전희에 시간을 들인다. 만일 그가 특정 부위가 어디인지 모른다면 그녀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단 한 번 밖에 성적 절정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그의 아내는 여러 번 도달할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는 그녀가 바라는 것을 얻게 해줘야 한다.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가 서로 정직하게 자신의 욕구에 대하여 논의하고, 이성에 대해 될수록 많이 알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몇 달에서 몇 년간의 대화를 통하여 남편과 아내 사이의 성적 관계를 알아가고 실천해가는 것은 가정에 큰 축복을 가져다준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자녀(Children of a Christian Family)

자녀들은 그리스도인 부모에게 완전히 순종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만일 그들이 순종한다면, 그들에게는 장수와 다른 축복들이 약속되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그리스도인 아버지들은, 가족의 머리로서, 자녀의 교육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부여받았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아버지의 책임이 두 가지임을 주목하라. 주님의 교훈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다. 먼저 훈계의 필요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자녀 훈계(Child Discipline)

훈계를 받은 적이 없는 아이는 성장하면 이기적이고 권위에 대해 반역적일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가 미리 세운 합리적인 규칙을 반항적으로 어길 때에는 훈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수 또는 유치한 행위에 대해서 처벌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실수 또는 무책임으로 인한 결과를 대면하도록 요구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성인으로서 삶의 현실을 대면하는 것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경의 말씀대로, 어린아이들은 체벌하는 방식으로 훈계해야 한다. 물론, 갓난아기는 때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아기들은 그냥 제멋대로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출생의 첫날부터 그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주관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무엇을 하고 있는 것 또는 하려는 것으로부터 제한받음으로써 단어 “아니오”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그들이 일단 “아니오”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순종하지 않을 때 엉덩이를 살짝 때림으로써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다. 이런 훈계가 일관성 있게 이뤄지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부모들은 또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매번 울 때마다 즉각적으로 주는 것과 같이 아이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동조하는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세울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울라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 만일 부모가 아이들이 화내거나 울 때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이런 부모들은 실제로 그와 같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 된다. 현명한 부모는 단지 자녀의 바람직한 행동만 보상해 준다.

체벌은 육체적으로 유해하지 않아야 하지만, 확실히 불순종하는 아이가 짧은 시간 동안의 울음을 일으킬 정도로 고통을 생성해야 한다. 체벌을 통하여, 아이는 불순종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성경도 이 점을 긍정하고 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 13:24; 22:15; 23:13-14; 29:15).

부모가 규칙을 적용함에 있어서 아이들을 순종시키려고 그들을 위협할 필요는 없다. 만일 아이가 반항적으로 불순종한다면, 그 아이는 매를 맞아야 한다. 부모가 자신의 불순종하는 아이를 때리겠다는 위협만 한다면, 그는 단지 그의 아이의 지속적인 불순종만 부추기게 될 뿐이다. 그 결과로, 그 아이는 그 부모의 언성이 어느 정도 높아지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됨을 배우게 된다.

매로 훈계한 후에는, 아이를 포옹해 주고 부모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자녀 교육(Train Up a Child)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강조 추가)라는 잠언 22장 6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반드시 자녀를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육은 불순종에 대한 처벌뿐 아니라, 좋은 행동에 대한 보상도 포함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좋은 행동과 좋은 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칭찬해줘야 한다. 아이들은 그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고 부모께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칭찬과 포옹과 키스를 해주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통하여 그들의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다.

“교육”한다는 것은 “순종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교회에 다니거나 매일 기도를 할지 여부에 대해서 선택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한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알만큼 충분히 책임적이지 않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부모를 주셨다. 우리가 잠언 22장 6절에서 읽다시피 자녀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노력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부모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아이들이 늙어도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다.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들에게 부여되는 책임도 증가해야 한다. 효과적인 양육의 목표는 아이가 점차 성인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지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자기 절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를 점점 더 많이 부여받아야 한다. 또한, 십대들은 자기가 내린 결정에 따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며 부모가 자기를 항상 문제 속에서 건져주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의 가르침의 책임(Parents’ Responsibility to Instruct)

에베소서 6장 4절을 읽으면, 아버지들은 자녀를 훈계할 책임뿐 아니라 주님 안에서 가르칠 책임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 성경적인 도덕관, 그리스도인의 성품, 또는 신학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 아니라 아버지의 책임이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는 책임을 주일학교 교사에게 모두 이관하는 부모는 매우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강조 추가).

그리스도인 부모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예수님의 탄생,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이야기를 배워야 한다. 많은 아이들은 다섯 살이나 여섯 살부터 복음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주님을 섬기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조금 지나면(여섯 살이나 일곱 살, 때로는 더 어릴 적부터), 그들은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으며 증거로 방언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아이마다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인 규칙은 없다. 요점은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들의 영적 양육을 그들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 사랑을 위한 10가지 규칙(Ten Rules for Loving Your Children)

1).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엡 6:4). 어린이가 어른처럼 행동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그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면, 그들은 그것이 불가능한 줄을 알고,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을 그만둘 것이다.

2). 자신의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라. 당신이 그들이 가진 독특한 자질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흔상하고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 주라.

3). 자녀들에게 집안일에 관한 책임을 부여하여 그들이 가족의 중요한 성원임을 알게 하라.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곧 성취이다.

4).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라.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당신에게 있어서 그들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들에게 물질적인 것을 주는 것이 그들에게 자신을 주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 또한, 아이들은 그들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5). 만일 당신이 뭔가 부정적인 말을 꼭 해야 한다면, 긍정적인 방식으로 말하라. 나는 아이들이 나를 거역했을 때 종래로 그들이 “나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대신, 나는 “너는 좋은 아이야, 그리고 좋은 아이는 네가 금방 한 것처럼 행동하지 않아”라고 내 아들에게 말할 것이다(그다음에 나는 그를 찰싹 때려줄 것이다).

6). “안돼”라는 말이 “내가 너를 관심한다”라는 말임을 인식시킨다. 아이들은 모든 일을 항상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부모가 그들을 제한할 만큼 그들을 충분히 관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7).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을 모방하도록 요구하라. 아이들은 부모의 본을 통하여 배울 수 있다. 현명한 부모는 종래로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말대로 하고 행동대로 하지 말라”

8). 아이들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지 말라. 오직 걸림돌만 제거해 주고 디딤돌은 그들의 길에 남겨두라.

9).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라. 나는 영적으로 미지근한 부모들의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을 발견했다. 구원받지 못한 부모와 완전히 헌신적인 그리스도인 부모를 둔 그리스도인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둥지”를 떠난 후에도 계속하여 하나님을 섬긴다.

10). 당신의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에 우선순위를 두지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육, 성경의 가르침을 주는 데에는 실패한다.

사역, 결혼 및 가족의 우선순위(The Priorities of Ministry, Marriage and Family)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범하는 가장 일반적인 오류는 아마도 사역에 대한 헌신 때문에 결혼과 가족을 소홀히 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희생은 “주님의 일”을 위한 희생이라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이런 오류는 제자 삼는 사역자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진정한 순종과 헌신의 정도는 그의 배우자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반영됨을 깨달을 때 교정된다. 만일 사역자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거나, 주님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고 훈계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들과 필요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시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사역”을 위해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를 무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는 육적인 사역의 확실한 표시이다. 무거운 작업 부담을 안고 있는 많은 제도적 교회의 목사들은 이 점을 예증한다. 그들은 진행 중인 모든 교회 프로그램을 유지하다가 탈진해버린다.

예수님은 그분의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다고 약속하셨다(마 11:30을 보라). 그분은 사역자가 자기 가족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 세상 또는 교회에게 자신의 헌신을 보여주라고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다. 사실, 장로에 대한 요구 사항을 보면 그는 반드시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딤전 3:4) 사람이어야 한다. 가족과의 관계는 그가 사역에 적합한지를 잘 보여줄 수 있다.

다른 곳에 다니면서 사역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집에 있을 때 가족한테 초점을 맞추고 여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된 동료들은 이런 안배가 가능하도록 자신의 노력을 다해 도와야 한다. 제자 삼는 사역자는 자신의 아이들이 주요 제자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만일 그가 그 일에 실패하면, 그는 자기의 집 밖에서 제자를 삼을 자격이 없다.

 


[1]하나님은 내숭을 떠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에 관한 더 많은 증거를 원하면 아 7:1-9 과 레18:1-23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