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Chapter Ten)

새 생명(The New Birth)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들이 “거듭났다”고 한다. 거듭났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이 장에서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거듭남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된다. 성경은 우리가 단지 육적인 존재가 아닌 영적인 존재라고 말씀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이렇게 썼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희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강조 추가).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영, 혼, 몸 세 부분으로 구성된 존재로 간주할 수 있다. 성경에는 이 세 부분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기에,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그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의미에 근거하여 그들 사이를 구분 지었다. 우리는 보통 우리 을 우리의 육적인 존재 – 육체, 뼈, 혈액 등으로 보고, 우리의 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적인 존재 – 우리의 마음으로 본다. 우리의 은 분명히 우리의 영적인 존재 또는 사도 베드로가 묘사한 것처럼 “마음에 숨은 사람”(벧전 3:4)으로 볼 수 있다.

육적인 눈으로는 영을 볼 수 없기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것의 존재의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모두 영적인 존재임을 매우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이 죽으면 몸은 기능을 중단하나 영과 혼은 계속하여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몸을 떠나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며(히 9:27을 보라), 심판 후에는,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가게 된다. 결국, 모든 사람의 영과 혼은 부활 시에 자신의 몸과 다시 재결합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영에 대한 더 자세한 정의(The Human Spirit More Defined)

베드로 전서 3:4에서, 베드로는 영을 “마음에 숨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영도 사람임을 나타냈다. 바울 역시 영을 “속사람”으로 표현하며, 인간의 영은 단지 개념이나 힘이 아닌 한 사람임을 나타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강조 추가).

“겉사람”은 분명히 육적인 몸을 설명한 반면, “속사람”은 영에 대한 정의이다. 몸은 날로 낡아지지만, 영은 날로 새로워진다.

바울이 몸과 영을 모두 사람이라고 한 점을 다시 유의하라. 따라서 당신이 자신의 영을 상상할 때 영적인 구름 따위는 상상하지 말라. 당신과 같은 형상을 가진 사람을 상상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나 만일 당신의 몸이 늙었다고 해서 당신의 영도 늙어 보인다고 생각하지 말라. 자신이 가장 혈기왕성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라, 왜냐하면, 당신의 영은 영원히 늙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의 영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만일 당신이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다면 당신의 영도 거듭나게 된다. 당신의 영은 하나님의 성령님과 합하여 지며(고전 6:17을 보라), 성령님은 당신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도해준다(롬 10:14을 보라).

성경은 하나님이 영이시라고(요 4:24을 보라) 가르치며, 천사와 마귀도 영이다. 그들은 모든 형태가 있으며 모두 영적인 영역에 존재한다. 그러나 영적인 영역은 우리의 육체적 감각으로는 감지할 수 없다. 우리의 육체적 감각으로 영적 세계를 감지하려는 것은 손으로 라디오 신호를 느끼려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육체적 감각으로 객실 안의 라디오 전파를 감지할 수는 없다고 해서 라디오 전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라디오를 켜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영적인 영역에도 해당된다. 육체적인 감각으로 영적인 영역을 감지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영역은 분명히 존재하며,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그들도 영적인 존재이기에 이 영적인 영역에 속해 있다. 그들은 영적으로 사탄과 관련되어 있거나(그들은 회개하지 않은 경우), 또는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그들이 거듭난 경우). 일부 심령술사들은 자신의 영을 통해 어떻게 영적인 세계와 접촉하는지를 배웠다. 하지만, 그들은 사탄의 지배 영역인 어둠의 나라와 연락하고 있다.

영원한 몸(Eternal Bodies)

이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우리의 몸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하도록 하겠다. 비록 우리의 몸은 죽기 마련이지만, 우리의 육체적 죽음은 영구적이지 않다.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모든 죽은 사람의 몸을 부활시키실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의인의 몸이 부활한 뒤 적어도 천 년이 지난 후에야 불의한 자들의 몸이 부활할 것이라고 썼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 번째 부활이라[1]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계 20:4 중-6).

성경은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교회를 데려가실 때, 모든 의인의 몸이 부활하고,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내려온 그들의 과 결합할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처럼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4-17).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최초의 사람을 지으셨으므로, 그분께서 모든 사람의 몸의 요소를 재결성하여 같은 물질로 구성된 새로운 몸을 만드시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몸의 부활에 관해 바울은 이렇게 썼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42-44상, 50-53).

우리의 새로운 몸은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뛰어난 특성들을 갖고 있음을 유의하라. 새로운 몸은 결코 늙거나, 병 들거나, 죽지 않는다! 우리의 새로운 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받은 새로운 몸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게 하시리라(빌 3:20-21, 강조 추가).

사도 요한도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단언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강조 추가).

비록 우리의 생각으로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고 앞에 일어날 일에 대해 기뻐할 수 있다![2]

예수님께서 중생을 논하시다 (Jesus on the New Birth)

어느 한 번, 예수님은 니고데모란 유대인 지도자에게 인간의 영은 반드시 성령님에 의하여 거듭날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3-7).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니고데모가 처음 들었을 때에, 그는 육체적인 중생에 대해 말씀하시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인 거듭남을 말씀하셨음을 명확히 하셨다. 바로 사람의 영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적인 거듭남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영이 죄악에 물든 본성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죄의 본성은 성경에서 종종 죽음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는 죄의 본성을 영적 죽음으로 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육체적인 몸이 기능을 멈출 때)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영적 죽음의 정의(Spiritual Death Defined)

바울은 에베소서 2:1-3에서 영적 죽음이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였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강조 추가).

바울은 분명히 육체적 죽음을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허물과 죄로 죽었었다”고 말했다. 그 죄가 바로 영적 죽음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롬 5:12을 보라).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것은 영에 죄의 본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바울이 그들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한 점을 유의하라.

또한,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영이 사탄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영이 영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 역사한다고 말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마귀이며(엡 6:12을 보라), 그 악의 영들은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한다.

예수님은 거듭나지 못한 유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영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사탄의 본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영적 아버지가 바로 사탄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마귀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살인자들이며 거짓말쟁이들이다.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살인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살인자와 같은 증오를 품고 있으며, 살인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그들도 살인할 수 있다. 많은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낙태의 합법화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심지어 자신의 태아조차 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영적인 거듭납을 경험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적으로 거듭나면 죄의, 사탄의 본성은 그의 영에서 제거되며 하나님의 거룩한 본성으로 대체된다. 하나님의 성령님은 그의 영에 오셔서 그와 함께 거하신다. 그는 더는 “영적으로 죽은”자가 아니며, “영적으로 살아 있는”자로 거듭났다. 그의 영은 하나님에 대하여 더는 죽은 것이 아닌 산 것이 되었다. 그는 사탄의 영적 자녀 대신, 하나님의 영적 자녀가 되었다.

변화는 거듭남의 대체물이 아니다(Reformation is No Substitute for Regeneration)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어있기에, 그들이 자기변화를 어떻게 열심히 하든 상관없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단지 외적인 행위변화가 아닌 새로운 본성을 필요로 한다. 당신이 돼지를 아무리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향수를 뿌려주고, 목에 분홍색 리본을 달아준다 해도 돼지는 돼지일 뿐이다! 돼지의 본성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리고 당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더러운 냄새를 맡게 되며 돼지가 다시 진흙위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거듭나지 않은 종교인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좀 깨끗해 보일 수 있지만, 속은 여전히 더러운 모습 그대로이다. 예수님은 일부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처럼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5-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종교적이지만 성령님에 의한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다. 새롭게 거듭나면 겉사람뿐 아니라 속사람도 깨끗하게 해준다.

영이 거듭나면 혼은 어떻게 될까?(What Happens to the Soul When the Spirit is Reborn?)

사람의 영이 거듭나면, 그의 혼은 처음에는 본질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그가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정을 이미 내린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일단 그분의 자녀가 되면, 우리가 우리의 혼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대로 우리가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의 혼(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 속에 지속적인 외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우리는 점진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 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강조 추가).

야고보도 신자의 삶 속에 일어나게 되는 똑같은 과정을 썼다.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 1:21하).

야고보가 영이 이미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썼음을 유의하라. 그들의 혼도 구원을 필요로 하며, 그것은 오직 그들이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새 신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이유이다.

남아 있는 옛 본성(The Residue of the Old Nature)

새롭게 태어난 후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두 본성을 가진 사람임을 발견하게 되는데, 곧 바울이 말한 “성령과 육체”사이의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갈 5:17).

바울이 “육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옛 죄의 본성을 말한다. 우리안에 있는 이 두 가지 본성은 부동한 소욕을 산생하며, 각각 다른 행동과 생활방식을 낳게 된다.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에 대한 바울의 대조적인 비유를 유의하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19-23).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소욕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울은 그들이 육체의 일을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서에서도,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두 본성에 대해 썼으며, 육신대로 살면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하였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라…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0, 12-14, 강조 추가).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인에 대한 경고이다. 육신대로 살면(이것은 상습적인 행위를 나타낸다) 죽음의 결과를 낳게 된다. 바울은 영적 죽음에 대해 경고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결국 육체적으로 죽기 마련이며,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 그리스도인들도 육체적인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일시적으로 바울이 언급한 죄 중의 하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신자는 죄를 지었을 때에 죄책감을 느끼며 회개하기를 원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자는 당연히 깨끗하게 될 것이다(요일 1:9을 보라).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와 하나님사이의 관계가 파괴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그와 하나님사이의 교제를 파괴한 것이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이나 불순종하는 자녀이다. 만일 신자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다면, 그는 주님의 징계를 받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전쟁(The War)

만일 당신이 잘못된 일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 일을 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육체의 소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당신은 육신의 유혹을 받아 잘못을 저지르려고 할 때, 당신안에 그 유혹에 저항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발견했음이 틀림없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소욕”이다. 그리고 당신이 유혹을 받을 때 내면으로부터 오는 정죄감을 느꼈다면, 당신은 당신의 영의 음성을 들은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체의 소욕의 유혹을 받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육체의 소욕에 굴복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변명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가 순종과 거룩함으로 행동하고 육체의 본성을 극복하기를 바라신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육체의 소욕을 극복하기 위한 마법의 공식 같은 것은 없다. 바울은 그저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그리스도인도 다른 그리스도인에 비해 우세가 없다.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것은 우리 각자가 반드시 내려야 할 결정이며, 주님에 대한 우리의 헌신 정도는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는 정도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

바울은 이와 비슷한 내용을 썼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바울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발생하였다. 우리는 죄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죄를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문제가 아니라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도록 유지하는 문제이다.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도록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속사람의 인도를 따라 행하고 육체의 충동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게 되며 그분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재창조된 영의 본성(The Nature of our Recreated Spirits)

우리의 재창조된 영의 본성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가 바로 그리스도시다.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성령님을 통해, 사실 예수님의 본성은 우리안에 거하신다.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고 말했다.

우리가 그분의 능력과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실제로 더 많은 사랑, 인내, 또는 자제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안에는 가장 많은 사랑과 인내와 자제력을 가지신 분이 살아계신다!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은 다만 그분께서 우리를 통해 사시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본성과 맞서 싸우며, 예수님의 본성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지 못하도록 방애하고 있는 하나의 큰 적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육체이다. 우리가 반드시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바울이 말할 만도 하다. 육체를 다루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하나님께 그것에 대해 뭔가를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바울도 역시 그의 육체적 본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는 자신이 책임지고 극복하였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당신도 주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나아가려면 역시 당신의 몸을 영의 노예로 삼아야만 한다. 당신은 할 수 있다!

 


[1]요한이 이것이 “첫째 부활”이라는 말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이 부활 전에 다른 대규모의 부활이 없었음을 믿게 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세계적인 환란의 끝에 일어나기 때문에, 환란전 휴거와 모순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데살로니가 전서 4:13-17의 기록에 따라 예수님이 강림하셔서 교회가 휴거할 때 대량의 부활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하여 휴거와 마지막 때에 관한 장에서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2]부활의 주제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위해 단 12:1-2; 요 11:23-26; 행 24:14-15; 고전 15:1-57을 보라.